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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130호][칼럼] 의대생에게 실습을 허하노라?
작성자 관리자 (2013.06.18 13:26) 조회수  1941

의대생에게 실습을 허하노라?

 -서홍관(국립암센터)

1981년 본과 3학년이던 나는 산과 실습이었는데, 가운을 입고 분만실로 찾아 갔다. 산모 한 명이 분만이 임박했다고 서둘러서 분만대로 옮기는데, 혹시나 분만대로 옮기기 전에 아기가 나올까봐 산모를 침대에서 분만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느꼈다. 분만대에 산모가 옮겨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분만이 시작되었다. 

산모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고, 분만실 간호사도 산모에게 힘을 주라고 같이 고함을 질러대는데 나는 겁이 났다. 숫총각이었던 나는 여성의 성기를 처음 보는 순간이었던지라, 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산모의 요로로 넬라톤을 넣어서 소변을 빼내는 과정도 어딘지 모르게 동물적이었고, 양수가 터지고 주변이 엉망이 되었다. 신비로운 환상은 모두 깨졌고, 피범벅이었다. 산모가 힘을 줄 때마다 나도 힘을 주었고, 실습이 끝나니 온 몸이 지쳐버렸다. 아기가 울 때에야 긴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3주의 산과 실습이 끝난 뒤 3주 동안은 부인과 실습을 하게 되었다. 외래 진료실에 들어서자, 한 여성이 부인과 진찰대에 올라갔는데 그 여성과 우리 사이에는 커텐이 쳐 있어서 그 여성은 나를 볼 수 없었다. 교수는 질경(스페큘룸)을 넣고 관찰하더니, 환자에게 말을 걸면서 나에게 손짓으로 자궁경부를 보라고 하면서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틀어주셨다. 그 분은 환자가 내려 간 뒤 여성 질분비물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서 정상과 비정상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지난해 (2012년) 9월 전주지법 제5민사부는 의대생들이 분만과정을 참관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병원 측이 산모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병원측이 산모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의대생을 분만 과정에 참관하도록 한 것은 산모의 수치심을 자극해 정신적 침해가 발생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학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이자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의 임상실습 및 참관이 교육과정의 일부로 정해져 있으며 환자 입장에서도 이를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고 보고 “대학병원의 경우에는 참관에 대한 산모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더라도 묵시적인 동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산모의 반대의사가 명시적으로 표명되지 않는 한 학생들의 참관이 허용된다"고 판시했다. 

최근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상(李箱)의 수필집을 읽다가 재미있는 글을 읽었기에 소개한다. 이상은 1910년생으로 지금의 서울공대에 해당하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당시 최고의 직장으로 인정되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技手)가 되었다. 시와 소설, 또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던 이상은 성매매 업소(유곽) 출입도 일찍 시작한 것같다. 폐결핵에 걸려 직장을 그만두고 온천으로 요양을 떠난 곳에 가서도 사흘을 못 참고 그곳의 기생이었던 금홍이와 사랑을 나누는데 몰두했다는 사연은 스스로 <봉별기(逢別記)>라는 소설에 잘 표현해 놓았다.  

당시는 결핵약도 없었고, 항생제도 아직 발견되기 전이라 성병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시기인지는 모르나 이상이 성병으로 대학병원에 찾아간 듯싶다. 

“그다니 명예롭지 못한 그러나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까지 불명예라고까지 할 것도 없는 질환을 가지고 어떤 학부 부속병원에를 갔다. 진찰이 끝나고 인제 치료를 시작하려 그 그리 보기 좋지 않은 베드 위에 올라 누웠다. 그랬더니 난데 없이 수십명의 검은 옷을 입은 장정 일단이 우- 난입하여서는 내 침상을 둘러싸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학부 재학의 학생들이요 이것은 임상강의 시간임에 틀림없다. 손에는 각각 노트를 들었고, 시선을 내 환부인 한 점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의사 즉 교수는 서서히 입을 열어 용의주도하게 내 치료받고자 하는 개소(신체부위)를 주무르면서 유창한 어조로 강의를 개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참으로 천만의외의 일일뿐 아니라 정말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봉변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들은 대체 누구의 허락을 얻어 나를 실험동물로 사용하는 것인가? 옆구리에 종기 하나가 나도 그것을 남에게 내어 보이는 것이 불쾌하겠거늘 아픈 탓으로 치부를 내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그 자그마한 기회를 타서 밑천 들이지 않고 그들의 실험동물을 얻고자 꾀하는 것일 것이니 치료를 받기 위하여는 반드시 이런 굴욕을 받아야만 된다는 제도라면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변(變)만은 어디까지 불쾌한 일이다. 

의학의 진보발전을 위하여 노구찌 박사는 황열병에 죽기까지도 하였고, 또 최근 어떤 학자는 호열자균(콜레라균)을 스스로 삼켰다 한다. 이와 같은 예에 비긴다면 치부를 잠시 학생들에게 구경시켰다는 것쯤 심술부릴 꺼리조차 못될 것이다. 차라리 잠시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참았다는 것이 진지한 연구의 한 도움이 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오 기뻐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반드시 이렇게 실험동물로 제공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아니리라. 환부를 내어 보이는 것은 어느 사람에게 있어서도 유쾌치 못한 일일 것이다. 의학만이 홀로 문화의 발달향상을 짊어진 것은 아니겠고, 이 사회에서 생활을 향유하는 이 치고는 누구나 적든 많든 문화를 담당하는 일원임에 틀림없다. 허락없이 의학의 연구재료로 제공될 그런 호락호락한 몸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는, 교수는, 박사는, 그가 어떤 종류의 미미한 인간에 불과한 경우일지라도 반드시 그의 감정을 존중히 하여 한마디 간곡한 청탁의 말이 있어야 할 것이요. 승낙의 말이 있은 다음에야 교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겠다.“

이상의 글에 등장하는 콜레라균을 먹은 사람은 위생학의 선구자였던 독일의 페텐코퍼(Pettenkofer)였다. 그는 세균학의 선구자인 코흐의 세균병인설(germ theory)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1892년 당시 74세였던 그는 코흐의 실험실에 콜레라균이 가득 담긴 배양액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양액을 몽땅 마셔버린다. 그는 우연히도 심각하게 앓지는 않았으므로 세균병인설을 믿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건축학도이고, 문인이고,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이상이 의학에 대해서도 상식이 풍부했다는 점이 신기하고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도 주장하는 바가 논리정연하여 놀랍기도 하다. 환자들의 신체를 이용하여 의술을 연마해야 하는 우리 의학도들은 근대의학이 막 도입되었던 1930년경 이상이 실습대상이 되었을 때 느꼈던 그의 감정을 통해 다시 한번 환자들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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